더트래커 = 박지훈 기자

한진이 지난 2023년 발행한 전환사채(CB)의 콜옵션을 행사해 자사주를 대거 매입한 뒤, 이를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조치는 지배주주 일가가 CB를 통해 편법적으로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직후 나온 것으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진은 지난 3일 유진투자증권을 상대로 2023년 7월 발행한 300억원 규모의 무기명식 이권부 사모 전환사채에 대해 콜옵션(매도청구권)을 행사했다. 행사 규모는 84억 원으로, 해당 CB는 주식 42만8950주(발행주식의 2.92%)로 전환할 수 있는 물량이다.

한진은 “주주가치 제고”를 이유로 들며, 이번 콜옵션 행사로 확보한 자사주 전량을 올해 내 소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의 유통 주식 수를 줄여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전환사채 발행 이후 꾸준히 제기돼온 의혹과 맞물려 있다. 한진은 발행 당시 전환사채 물량 중 27.51%에 대해 제3자가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설정해 뒀다.

지난 7월 이사회에서는 콜옵션 매수인 지정 안건이 통과됐다. 이 매수인 명단에는 조에밀리리(한국명 조현민) 한진 사장을 비롯해 노삼석 대표이사, 류경표 부회장 등 주요 경영진이 포함됐다.

이들은 전환가격 주당 1만8630원에 CB를 매입했는데, 이는 당시 시장 주가(2만1000원대)보다 낮은 수준이다. 다만, 이들의 콜옵션 행사 규모는 소규모(0.1%, 약 1569주)로 물량 자체는 크지 않아 개인 기준으로는 큰 시세차익은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현민 사장이 982주, 노삼석 한진 대표이사가 314주, 류경표 부회장(당시 한진 CEO)이 149주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모두 주식 전환을 앞두고 있다.

조에밀리리(한국명 조현민) 한진 사장과 한진 사옥. 그래픽=터크래커 이강 기자

이번 콜옵션 행사는 전체 CB의 일부에 불과하다. 논란은 남은 물량이다. 결국 조 사장 등의 지분 확대에 활용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경제단체와 시장은 한진과 조현민 사장 및 경영진 간 거래를 ‘편법적 지분 확보’라고 지적해 왔다.

조현민 사장의 지분율은 2023년 6월 말 0.06%에서 2024년 6월 말 기준 0.13%로 증가했다. 2년간 지분 확대 작업이 반영된 수치로 해석된다.

현재 한진의 최대주주는 한진칼로, 올해 6월 기준 지분율은 30.77%다. 정석인하학원이 3.18%, 조현민 사장이 0.13%,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0.03%다.

한진은 이번 콜옵션 물량을 모두 자사주로 전환한 뒤 소각(42만8645주)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결과적으로, 전환사채 발행과 지배주주 측의 콜옵션 행사 구조가 의혹을 낳았지만, 회사 측은 이를 자사주 소각이라는 방식으로 의혹을 무력화했다. 그러나 논란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부터 CB가 왜 필요했는지, 지배주주 일가의 지분 확대를 위한 우회로로 사용될 가능성은 없었는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한편 조현민 사장은 2018년 이른바 ‘물컵 갑질’ 사건으로 사회적 질타를 받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당시 한진그룹은 조 사장을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사퇴시켰으나, 1년 2개월 뒤인 2019년 6월, 한진칼 전무로 경영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