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래커 = 박지훈 기자
SK텔레콤이 유심(USIM) 해킹 사태 이후 수천억원대의 잠재 손실 위험에 직면한 가운데 별도 기준 유동성이 급격한 위축됐다. SK브로드밴드 지분 인수 및 연이은 배당 지급 이후 SK텔레콤이 보유한 별도 현금성 자산은 약 1114억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말 SK텔레콤은 1조2442억원의 별도 현금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4월 중순 SK브로드밴드 잔여 지분 인수에 1조1459억원이 투입되며 현금이 급격히 빠져나갔고, 지난해 결산 배당 2235억원이 올 초 지급됐고, 올해 1분기 분기배당 1767억원이 6월 연이어 집행 예정으로 잡히면서 가용 자금은 사실상 바닥 수준에 근접했다. 유일한 현금 유입은 카카오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4133억원으로, 유동성 방어에 보탬이 되기는 부족한 규모다.
문제는 유심 해킹 사태로 인해 발생 가능한 추가 현금 유출 리스크다. 현재까지 정확한 손해 규모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한국신용평가는 유심 교체 비용, 과징금, 고객 보상 등을 포함한 잠정 손실액이 최대 4000억원 이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가 현실화될 경우, 단발성 손해를 넘어 반복적 유출 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이동통신 가입자 기반의 약화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사태 발생 이후 약 26만명이 경쟁 통신사로 이탈했고, 이 중 위약금 부담이 큰 이용자는 아직 이동을 유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이 지난 7일 설명자료(위약금 면제 해지 관련 드리는 말씀) 통해 “위약금 면제는 자산 손실을 수조원대로 확대시킬 수 있다”고 공개한 것은 내부적으로 이탈 시나리오별 손실 추정을 구체화해두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더트래커 취재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자체적으로 고위험군 중심 회선 해지 가정을 통해 시뮬레이션을 가동 중이다. 1000만명 교체 시 약 400억원의 유심 재발급 비용이 발생하며, 향후 보조금 확대와 신용도 하락에 따른 조달비용 증가까지 고려하면 손실 추정치는 최소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텔레콤이 유심(USIM) 해킹 사태 이후, 가입자들이 유심 무상 교체를 위해 T월드 매장 앞에서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사진=더트래커/박지훈 기자
SK텔레콤이 버틸 수 있는 재무적 기반은 여전히 견조한 영업현금흐름이다. 별도 기준으로 연간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단기 충격에 대한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동성의 급격한 소진은 타이밍의 문제가 된다. 실제 이번 사태가 발생한 시점은 SK브로드밴드 딜 종결 직후였으며, 분기배당 지급과 맞물리며 자금 여력이 일시적으로 취약해진 구간이었다.
현금창출력만으로 현 사태를 방어할 수 있느냐에 대한 회의론도 존재한다. SK텔레콤은 연간 1조7000억원~2조원 안팎의 자본적지출(CAPEX)을 집행해왔고, 올해도 이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 수익 기반을 위한 필수 지출이라는 점에서 CAPEX 조정은 단기 유동성 확보에 실효성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SK텔레콤의 핵심 자산인 ‘신뢰 기반의 가입자 수익 구조’ 자체를 흔들고 있다. 번호이동 해지 면제 여부와 그 강도에 따라 시장점유율에 미치는 영향은 일회성 비용보다 중장기 실적 훼손에 직결될 수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위약금 면제에 따른 가입자 이탈과 점유율 방어를 위한 보조금 확대가 중장기적으로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SK텔레콤은 오는 12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증권가에서는 별도 기준 영업이익을 5530억원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장 컨센서스에 부합하는 수준이지만, 숫자 그 자체보다도 추후 전개될 리스크 요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지에 따라 재무적 신뢰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직접 사과에 나서며 그룹 차원의 대응 기조를 밝힌 상태다. 다만 ‘보안투자 확대’가 실제 현금 흐름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될지, 외부 전문가 중심의 정보보호혁신위원회가 실효적 통제권한을 갖는 구조인지에 따라 그룹 내 자금 배분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
시장은 이미 주가를 통해 일부 우려를 반영한 상태다. 해킹 사태 이후 SK텔레콤 주가는 약 8.5% 하락해 5만3300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9일 주가는 5만2300원에 장마감 했다. 하지만 여전히 배당수익률이 7%를 상회하는 수준이어서, 향후 리스크의 실체화 여부에 따라 반등 여력도 공존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