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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상장 제약사 대원제약과 엠케이전자가 지난 2일 갑자기 보유 자사주 전량을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EB) 발행을 공시했다. 대원제약의 경우 2022년말 이후 전혀 변동이 없던 자사주다.

회사 측은 ‘운영자금및 시설자금 조달용’이라고 공시했지만 관련업계는 현재 여당 주도로 논의 중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안을 피하기 위한 선제대응책으로 보고 있다.

대원제약은 지난 2일 회사 보유 자사주 99만4144주(지분율 4.43%)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제1회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사모 교환사채(EB) 158억5759만원을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EB는 특정 조건하에서 회사 보유 상장주식과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회사채를 말한다.

EB 만기일은 2030년9월9일이고, 사채 이자율은 0%, 교환비율은 100%, 교환가액은 주당 15951원으로 22% 할증 발행이라고 밝혔다. 사채권자는 발행 2년 후부터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가 가능하며, 청약일은 9월2일, 납입일은 9월9일이다.

지난 2일 대원제약의 자사주 처분 공시

교환청구는 당장 오는 16일부터 가능하고, 종료일은 2030년9월2일이다. EB 발행 대상자는 사모펀드로 보이는 ‘에이치제1호 사모투자합자회사’라고 밝혔다. 사모펀드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교환청구 가능기간으로 보면 이 사모펀드는 당장 오는 16일부터 대원제약 자사주를 교환청구할 수 있다. 형식은 EB 발행이지만 자사주를 이 사모펀드에 사실상 매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대원제약은 그동안 여러차례 CB(전환사채) 등을 발행했지만 EB 발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보유 중인 자사주 4.43%는 2020년과 21년, 22년 3년 연속 무상증자와 장내매수 등으로 취득한 물량으로, 2022년 말 이후 지금까지 자사주 변동은 전혀 없었다.

3년 가량 전혀 변동이 없던 보유 자사주를 이렇게 갑자기 전량 교환사채 형식으로 처분하는 이유에 대해 대원제약 측은 “운영자금 확보용”이라고 설명했다.

교환사채 발행 대상자와 발행목적 공시


하지만 대원제약 재무제표를 살펴 보면 당장에 심각한 자금난이나 현금 수요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6월 말 연결기준 유동부채 2058억원에 유동자산이 2473억원으로 더 많고, 반기말 현금 및 현금성자산도 128억원을 갖고 있다.

올 상반기 연결 매출 3017억원에 영업이익 80억원, 반기순익 14억원으로, 전년동기보다 이익이 조금 줄긴 했으나 최근 수년간 흑자기조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 쌓아둔 이익잉여금도 2581억원, 순자산(자본총계)도 2800억원에 각각 이른다. 최근 신사업 진출이나 대규모 신규투자계획 발표도 없었다.

같은 날 상장기업 엠케이전자도 보유 자사주 5.27% 전량을 교환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 107억원 발행을 공시했다. 이 회사는 발행 용도로 운영자금에 시설자금을 더 얹었다.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두 회사 모두 발행 의도가 현재 여당 주도로 논의 중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 때문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실제 최근 일부 상장기업들 사이에선 이같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움직임을 피하려는 조기탈출 또는 회피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상장기업들이 자사주를 정도 이상으로 많이 보유하는 이유는 자사주를 매입 및 소각해 주주가치를 크게 올려주는 주주환원정책 의도도 있지만 필요시 매각해 보유자금을 확보하는 재테크용이나 임직원 인센티브용 또는 경영권 분쟁시 우호주주에게 매각하는 백기사용 등의 용도도 적지 않다.

작년까지는 인적분할 때 오너일가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보유지분율을 높일 수 있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용으로도 자주 쓰였으나 작년 말 법 개정 이후 이 용도는 노골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대원제약의 연결기준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일부


주주환원용으로 자사주를 보유하는 기업들이라면 정부가 법개정을 하든말든 언제든 소각해 실제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면 된다. 하지만 그 외 용도로 보유 중인 기업들이라면 현재 새 정부의 법개정 움직임에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만히 있다 강제소각 당할 바에야 선제적으로 우호세력 등에게 매각하거나 자사주 기반 EB 등을 발행하는 선제조치가 이래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SNT홀딩스와 SNT다이내믹스 등은 이미 지난 5월 자사주를 기반으로 하는 교환사채 발행에 성공했다. 태광산업도 지난 7월 보유 자사주 24.4% 전량을 교환대상으로 교환사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소액주주 등의 반발과 2대 주주가 소송을 거는 바람에 현재 발행절차는 중단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공약으로 자본ㆍ손익거래 등을 통한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행위를 근절하겠다며, 그 세부 과제의 하나로 ‘상장회사 자사주에 대한 원칙적 소각 제도화 검토’를 공약한 바 있다. 이에 여당이 현재 이를 법으로 명문화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난 6월 말 기준 대원제약의 최대주주는 오너 2세인 백승열 부회장으로 지분율 11.34%이며, 2대주주는 백 부회장 친형인 백승호 회장 9.63%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합계가 37.69%로 적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소액주주 비율도 47.85%에 달해 소액주주 내지 행동주의펀드 등의 움직임이 가능한 구조다. 백승호-백승열 형제는 지난 30여년간 형제 공동경영체제를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