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5일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 3차 상법 개정안을 연말까지 처리하겠다고 공식으로 밝힌 이후 법 시행 이전에 보유 자사주를 어떻게든 처리해버리려는 상장기업들의 움직임이 더 빨라지고 있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에만 LS마린솔루션, 삼화페인트공업, 아이스크림에듀 등 3개사가 장외매각(시간외대량매매)이나 교환사채(EB) 발행 방식으로 보유 자사주 전량을 처분한고 공시했다.
LS그룹 계열사인 LS마린솔루션은 이날 보유 자사주 전량인 134만5875주(지분율 2.58%)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사모 EB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기준가보다 3% 할증된 주당 27800원에 발행액은 374억원이다. 청약 및 납입일은 12월17일, 표면 및 만기이자율은 모두 1%다.
교환비율 100%에 2029년이 만기이며, 내년 6월27일부터 교환 청구가 가능하다. 2027년부터 EB 매입자의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도 가능하다. NH증권 등 증권사들이 인수했다.
회사 측은 자사주 EB 발행 이유로, 해상풍력발전기 설치를 위한 항만 투자와 그 부지매입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EB는 이 회사가 발행하는 첫 교환사채다. 그동안 단 한번도 교환사채 발행 자체가 없었던 점 등을 감안할 때 자사주 강제소각이 시행되기 전 서둘러 처분해버리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자사주 매각이나 EB 발행 등은 정부 눈치를 크게 살필 필요가 없는 작은 상장사들이 주로 용감(?)하게 강행해왔다. LS같은 대그룹 계열사가 자사주 전량을 EB로 발행하는 것은 오랫만의 일이다.
삼화페인트공업은 이날 EB와 시간외대량매매 두 가지 방식을 섞어 한꺼번에 자사주 전량(8.8%)을 모두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EB의 교환대상이 되는 자사주는 100만8642주(3.71%)로, 20% 할증된 주당 6857원에 모두 69억원어치다. 납입일은 12월8일.
장외매각 방식 대상은 나머지 자사주 138만주(5.09%)로, 12월1일 일본기업으로 추정되는 Chugoku Marine Paints, Ltd에 주당 5790원, 80억원에 전량매각한다고 밝혔다. 이 기업에 장외매각하는 이유는 “전략적 사업제휴 및 개별 업무협약을 통한 장기적 파트너십 구축과 상호 시너지 창출”이라고 밝혔다.
아이스크림에듀도 이날 보유 자사주 33만4842주(2.4%) 전량을 장외매각 방식으로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주당 1859원에 6.22억원어치며, 매각 예정일은 오는 12월29일, 처분목적은 운영자금 확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고 책임경영 차원에서 처분대상을 이 회사 최대주주인 시공테크로 선정했다고도 설명했다. 정부와 일반주주들을 의식하는 설명공시라고 볼 수 있다.
이들 기업과 대조적으로 이날 상장사 뷰웍스는 보유 자사주 39만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모두 75억원 상당으로, 소각 예정일은 12월9일이다.
지난달 27일에는 현대공업과 오디텍 2사가 보유 자사주 전량을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현대공업은 보유 자사주 전량 39만5322주(2.58%)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발행액은 26.54억원, 납입일은 12월15일이다. 역시 이 회사 첫 발행인 제1회 사모교환사채다.
상장사 오디텍은 정부가 원하는 자사주 소각과 시간외대량매매 방식을 혼용해 보유 자사주 전량(12.06%)을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12월10일 소각하는 자사주는 3.61%, 12.76억원이고, 28일부터 12월12일까지 장외매각하는 자사주는 9.5%, 30억원어치다.매각 목적은 투자재원 확보 및 재무건전성 증대라고 밝혔다.
반면 이날 미래에셋증권은 자사주 383억원어치를 12월5일 소각한다고 공시했고, 한미글로벌과 경인전자는 자사주 일부를 각각 사내근로복지기금 및 우리사주조합 출연용과 임직원상여금 지급용 등으로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민주당이 자사주 소각의무화 입법 연내 완료 방침을 밝힌 지난 달 25일에는 엠투아이가 보유 자사주 전량(4.33%), 신풍제약이 자사주 115억원어치를 각각 교환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반면 같은 날 디앤씨미디어는 19.71억원의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또 신흥은 자사주 2734주를 종업원상여로 지급한다고 각각 공시했다.
정부와 민주당은 상장기업들이 보유 자사주를 원칙대로 소각하지 않고, 재테크나 우호지분 확보용 등으로 장내외에서 매각하거나 맞교환하는 것 등 때문에 주가와 주주가치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는 이른바 ‘코리아디스카운트’ 현상이 발생한다고 보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자사주 전량 소각은 정부나 일반투자자들이 가장 희망하는 처분 방법이다. 자사주 일부를 임직원 상여나 복지용으로 돌리는 것도 어느 정도 용인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자사주 장내외 매각이나 맞교환은 정부나 일반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처분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자사주 교환대상 교환사채 발행도 자사주 소각을 피해 달아나기 위한 일종의 편법으로 보고있다. 이때문에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0일부터 자사주 교환사채 발행에 대해 공시규제를 크게 강화했다.
금감원의 규제 강화 후 한때 자사주 EB 발행이 뜸했으나 최근들어선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8월 이후 지난달 28일까지 모두 65개 상장사가 자사주 교환대상 교환사채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금감원 규제가 강화된 지난달 20일 이후 발행 공시는 모두 22곳에 달한다.
22사 중 광동제약은 금감원의 공시 정정을 요구받고 즉각 발행을 철회했다. 하지만 나머지 상장사들은 대부분 공시 정정을 1~3차례씩 해가면서도 발행을 강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