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재명 정부가 내건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는 ‘글로벌 5대 바이오 강국’ 진입이다. 바이오헬스 산업을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청사진 아래, 정부는 규제 개선과 정책적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오랜 침체를 딛고 반등을 노리는 산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원격진료 등 디지털 헬스케어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해 의료의 개념 자체를 바꾸고 있다. 더트레커는 ‘메디컬 테크’의 최전선을 찾아가 과거의 궤적을 짚고, 현재의 혁신을 기록하며, 미래를 향한 질문과 해답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더크래커 = 박지훈 기자

의료의 개념이 ‘질병의 치료’에서 ‘삶의 관리’로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를 급속히 앞당긴 계기였다. 방역과 거리두기의 틀 안에서 우리는 비대면 진료라는 선택지를 처음 경험했다. 제한적이고 임시적이었지만, 그 한 번의 경험은 강렬했다. 팬데믹이 끝난 지금, 의료계와 산업계는 다시 그 문을 열어젖힐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엔 실험이 아닌, 제도와 구조로서의 ‘디지털 의료’가 논의되고 있다.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쪽은 산업 현장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헬스케어 전담 조직을 신설하며, 데이터 기반 진료 플랫폼 구축에 착수했다. LG는 인공지능(AI) 기반 청진기와 디지털 병원 플랫폼에 투자하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도 뜨겁다. AI 음성 기록으로 진료 기록을 자동화하는 ‘뷰노’, 환자의 감정 상태를 AI가 분석해 상담을 돕는 ‘인에이블다우’, 환자 맞춤형 AI 운동 재활 솔루션을 개발하는 ‘네오펙트’까지 그 영역은 이제 병원이 아닌 집으로 확장되고 있다.

해외는 이미 한발 앞서 있다. 원격의료를 가장 폭넓게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의 ‘텔라닥’은 팬데믹 기간 동안 2억 건이 넘는 원격진료를 수행했다. 구글은 피트니스 밴드를 넘어서, 건강기록 통합 플랫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4년부터 지방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원격진료 인프라 확대 계획을 전면에 내걸었다. 중국은 2009년부터 정부가 원격의료를 전략적으로 확대했다. 허용 폭을 단계적으로 넓혀 현재는 원격진료 외에도 원격 처방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중국 정부는 현급(국내의 시·군·구에 해당)병원까지 확대하고 원격 처방이 가능한 질환의 종류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기술이 보완하는 의료’에서 ‘기술이 주도하는 의료’로의 전환이 국가 정책과 산업 전략으로 구현되는 모양새다.

메디컬 테크업체 네오펙트의 AI 재활 의료기기. 사진=네오펙트


국내외 기업은 물론 국가간 속도전에 돌입하게 된 배경에는 급격히 성장하는 시장 규모가 자리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노바원어드바이저(Nova One Advisor)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23년 2408억5000만달러(한화 328조8000억원)로 집계됐으며, 2033년까지 연평균 21.11% 성장해 약 1조6351억1000만달러(2231조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지아이에이(GIA·Global Industry Analysts)는 조금 더 보수적인 예측을 내놓았지만, 이 역시 2020년 1520억달러(207조5000억원)에서 연평균 18.8% 성장해 2027년 5090억달러(694조8000억원) 규모까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릴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2023년 기준 한국 디지털 헬스 산업은 약 6조5000억 규모로 추정되며, 매년 15.3%씩 성장했다. 디지털헬스케어 데이터 수집·처리 제품 및 부분품 제조업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직 미국, 유럽에 비해 절대 규모는 작지만, 기술 격차는 좁혀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병주 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들은 AI 기술을 발판 삼아 세계 헬스케어 시장 질서를 주도하고 있다”라며 “네오펙트의 경우 미국 홈·원격 재활 서비스 상용화와 북미 최상위 병원인 스탠포드 메디컬 헬스케어(Stanford Medical Healthcare)의 공식 밴더로 활동 중인 점은 산업 지형에서 매우 상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단순한 의료기기 수출이 아니라, ‘의료의 새로운 형식’을 수출하는 단계에 접어든 셈”이라고 덧붙였다.